Germany Euro 2016 squad

Here is a guide to the pronunciation of Germany’s Euro 2016 roster in German, followed by approximations in English in parentheses. In reality, German names are usually pronounced in English to be somewhat closer to how they would be pronounced according to English spelling conventions (e.g. Hummels as HUM-əlz [ˈhʌm.əlz] instead of HUU-məlss [ˈhʊm.əls]), and names that are shared between German and English such as Jonas and Thomas will often be pronounced as in English. A reasonable compromise might be somewhere in between, like following the approximations given below except for more peculiar features of German such as the hardening of final consonants; this would give HUU-məlz [ˈhʊm.əlz] for Hummels and LÖV [ˈlɜːv] for Löw, for example.

  • Manager: Joachim Löw (Germany) [ˈjoː.a.xɪm ˈløːf, jo.ˈa.xɪm-] (YOH-ə-k(h)im or yoh-A(H)KH-im LÖF [ˈjoʊ̯.ə.kɪm ˈlɜːf, joʊ̯.ˈɑːx.ɪm, -ˈɑːk.ɪm])
  • Bernd Leno [ˈbɛʁnt ˈleː.no] (BAIRNT LEH-noh [ˈbɛə̯ɹnt ˈleɪ̯n.oʊ̯])
  • Manuel Neuer [ˈmaː.nu̯eːl ˈnɔʏ̯.ɐ, ˈmaː.nu̯ɛl-] (MAH-nwel NOY-ər [ˈmɑːn.u‿ɛl ˈnɔɪ̯‿əɹ])
  • Marc-André ter Stegen [ˈmaʁk.an.ˈdʁeː teːɐ̯.ˈʃteː.ɡn̩, -ã.ˈdʁeː-] (MARK-on-DREH tair-SHTEH-gən [ˈmɑːɹk.ɒn.ˈdɹeɪ̯ tɛə̯ɹ.ˈʃteɪ̯ɡ.ən])
  • Jérôme Boateng [ʒe.ˈʁoːm bo.a.ˈtɛŋ] (zhe-ROHM bo-ə-TENG [ʒɛ.ˈɹoʊ̯m ˌboʊ̯.ə.ˈtɛŋ])
  • Jonas Hector [ˈjoː.nas ˈhɛk.toːɐ̯] (YOH-na(h)ss HEK-tohr [ˈjoʊ̯n.ɑːs ˈhɛk.tɔːɹ])
  • Benedikt Höwedes [ˈbeː.ne.dɪkt ˈhøː.və.dəs] (BEH-ni-dikt HÖ-və-dəss [ˈbeɪ̯n.ᵻ.dɪkt ˈhɜːv.əd.əs])
  • Mats Hummels [ˈmaʦ ˈhʊ.ml̩s] (MA(H)TS HUU-məlss [ˈmɑːts ˈhʊm.əls])
  • Joshua Kimmich [ˈjoː.zu‿a ˈkɪ.mɪç] (YOH-zoo-ə KIM-ik(h) [ˈjoʊ̯z.u‿ə ˈkɪm.ɪx, -ɪk])
  • Shkodran Mustafi [ˈʃkoː.dʁan ˈmʊs.ta.fi] (SHKOH-dra(h)n MUUST-ə-fee [ˈʃkoʊ̯.dɹɑːn ˈmʊst.əf.i])
  • Jonathan Tah [ˈjoː.na.tan ˈtaː] (YOH-nə-ta(h)n TAH [ˈjoʊ̯n.ə.tɑːn ˈtɑː])
  • Emre Can [ˈɛm.ʁə ˈʤan] (EM-reh JA(H)N [ˈɛm.ɹeɪ̯ ˈʤɑːn])
  • Julian Draxler [ju.ˈli̯aːn ˈdʁaks.lɐ] (yoo-li-AHN DRA(H)KS-lər [ˌjuːl.i.ˈɑːn ˈdɹɑːks.ləɹ])
  • Mario Götze [ˈmaː.ʁi̯o ˈɡœ.ʦə] (MAHR-i-oh GÖTS-ə [ˈmɑːɹ.i.oʊ̯ ˈɡɜːts.ə])
  • Sami Khedira [ˈsɛ.mi ke.ˈdiː.ʁa] (SAM-ee ke-DEER-ə [ˈsæm.i kɛ.ˈdɪə̯ɹ.ə])
  • Toni Kroos [ˈtoː.ni ˈkʁoːs] (TOH-nee KROHSS [ˈtoʊ̯n.i ˈkɹoʊ̯s])
  • Mesut Özil [ˈmeː.zʊt ˈøː.zɪl] (MEH-zuut Ö-zil [ˈmɛz.ʊt ˈɜːz.ɪl])
  • Leroy Sané [ˈleː.ʁɔʏ̯ za.ˈneː] (LEH-roy za(h)-NEH [ˈleɪ̯.ɹɔɪ̯ zɑː.ˈneɪ̯])
  • André Schürrle [an.ˈdʁeː ˈʃʏʁ.lə, ã.ˈdʁeː-] (on-DREH SHÜR-lə [ɒn.ˈdɹeː ˈʃʊə̯ɹl.ə])
  • Bastian Schweinsteiger [ˈbas.ti̯aːn ˈʃvaɪ̯n.ʃtaɪ̯.ɡɐ, ˈbas.ti̯an-] (BA(H)ST-i-ahn SHVYN-shty-gər [ˈbɑːst.i‿ɑːn ˈʃvaɪ̯n.ʃtaɪ̯ɡ.əɹ])
  • Julian Weigl [ju.ˈli̯aːn ˈvaɪ̯.ɡl̩] (yoo-li-AHN VY-gəl [ˌjuːl.i.ˈɑːn ˈvaɪ̯ɡ.əl])
  • Mario Gomez [ˈmaː.ʁi̯o ˈɡɔ.mɛs] (MAHR-i-oh GOH-mess [ˈmɑːɹ.i.oʊ̯ ˈɡoʊ̯m.ɛs])
  • Thomas Müller [ˈtoː.mas ˈɡɔ.mɛs] (TOH-ma(h)ss MÜL-ər [ˈtoʊ̯m.ɑːs ˈmjuːl.əɹ])
  • Lukas Podolski [ˈluː.kas po.ˈdɔls.ki] (LOO-ka(h)ss poh-DOL-skee [ˈluːk.ɑːs poʊ̯.ˈdɒlsk.i])

Due to the various backgrounds of the players, some of the names come from other languages. For instance, Shkodran Mustafi is pronounced [ʃkɔ.dɾan mus.ta.fi] in Albanian, Emre Can is pronounced [ˈem.ɾe ˈʤɑn] and Mesut Özil is pronounced [ˈme.sut ˈø.zil] (MEH-suut Ö-zil) in Turkish, Leroy Sané is pronounced [lə.ʁwa sa.ne, lə.ʁwɑ] (lə-RWAH sa(h)-NEH) in French, Mario Gómez is pronounced [ˈma.ɾjo ˈɡo.meθ] (MAHR-i-oh GOH-meth) in Spanish, and Łukasz Podolski is pronounced [ˈwu.kaʂ pɔ.ˈdɔl.skʲi] (WOO-ka(h)sh po-DOL-skee) in Polish. Ter Stegen, originally a Dutch surname, is pronounced [tər.ˈsteː.ɣən, tɛr-] (tər-STEH-khə(n)) in Dutch. On the other hand, while the spelling is superficially English, Joshua Kimmich’s given name is pronounced in the German way, as if spelled Josua.

Emre Can’s surname is often pronounced [ˈʧan] (CHA(H)N) by German speakers, partly because the sound [ʤ] represented by c in Turkish spelling (the j sound in English) is not part of the native sound inventory of German and is often replaced by the tsch sound [ʧ] of German (the ch sound in English). But even German speakers who distinguish [ʤ] and [ʧ] in English loanwords might use [ʧ] for Can because they are unaware of Turkish spelling conv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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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 몽골 황제를 만나다: 중세 유럽인 이름 표기의 어려움

마르코 폴로(이탈리아어: Marco Polo [ˈmar.ko.ˈpɔː.lo], 1254년~1324년) 이전에도 몽골 제국의 황제를 만난 유럽인들이 있었다.

칭기즈 칸(Činggis Qaγan 칭기스 카간, 1162년경~1227년)이 세운 몽골 제국의 정복 활동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사한국(四汗國) 가운데 하나인 킵차크한국의 시조 바투 칸(Batu Qan, 1207년경~1255년)이 이끄는 몽골군은 1240년 동유럽의 키예프 대공국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에는 헝가리 평원을 휩쓸었다. 오스트리아의 빈을 코앞에 둔 몽골군의 서진을 멈춘 것은 유럽인들의 저항이 아니라 본국에서 제2대 황제 오고타이 칸(Ögödei/Ögedei Qaγan 오고데이/오게데이 카간, 1186년경~1241년)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바투 칸은 전통에 따라 다음 황제를 뽑기 위한 회의에 참여하러 정복 활동을 멈추고 수도 카라코룸(Qara Qorum, 오늘날의 몽골 중부)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유럽인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몽골군은 그들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이들이 어디서 왔으며 언제 다시 돌아올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4세(라틴어: Innocentius IV)는 몽골 제국에 여러 사절을 보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프란체스코회 수사 조반니 다피안 델카르피네(이탈리아어: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ʤo.ˈvan.ni.da.ˈpjan.del.ˈkar.pi.ne], 1185년경~1252년)는 카라코룸에서 제3대 황제 귀위크 칸(Güyüg Qaγan 구유그 카간, 재위 1246년~1248년)의 즉위식을 지켜보고 침략과 살육의 중단을 요청하는 교황의 친서를 그에게 전달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에서 서한을 보냈다는 것 외에는 교황이 어떤 존재인지 알 리가 없는 귀위크 칸은 교황과 휘하 군주들이 직접 그를 찾아와 복종을 맹세할 것을 강요하는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교황의 서한은 라틴어로, 귀위크 칸의 답장은 페르시아어로 썼다.

도미니크회 수사 롱쥐모의 앙드레(프랑스어: André de Longjumeau [ɑ̃.dʁe.də.lɔ̃.ʒy.mo] 앙드레 드롱쥐모, 1200년경~1271년경)도 같은 시기 인노첸시오 4세의 사절로서 몽골 제국을 방문, 오늘날의 이란 북서부의 타브리즈(Tabriz 페르시아어: تبریز [tæb.ˈriːz])까지 여행하여 거기서 만난 몽골 장군에게 교황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몇 년 후에 앙드레는 제7차 십자군 원정(1248년~1254년)을 주도한 프랑스의 ‘성왕(聖王)’ 루이 9세(프랑스어: Louis IX [lwi.nœf] 루이 뇌프, 재위 1226년~1270년)의 사절로 몽골 제국을 다시 찾아 1249~50년의 겨울에 카라코룸 또는 그 근처로 추정되는 몽골 궁전까지 이르렀으나 귀위크 칸은 이미 죽고 그의 황후 오굴 카이미시(Oγul Qaimiš, 1251년 사망)가 섭정을 하고 있었다. 황후는 루이 9세의 서한을 알아서 복종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해마다 금과 은을 조공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는 답장을 보냈다. 루이 9세는 오굴 카이미시의 오만한 서한에 충격을 받고 사절을 보낸 것을 크게 후회했다.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의 몽골 제국 여행

하지만 얼마 후 몽골 제국의 유럽 침공군을 이끌었던 바투 칸의 장남 사르타크(Sartaq, 1256년 사망)가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루이 9세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그와 연락을 취하고자 했다. 대신 앞선 사절단을 통해 받은 굴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왕이 보내는 정식 사절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플랑드르 출신의 프란체스코회 선교사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프랑스어: Guillaume de Rubrouck [ɡi.joːmə.də.ʁy.bʁuk] 기욤 드뤼브루크, 네덜란드어: Willem van Rubroek [ˈʋɪ.ləm.vɑn.ˈryː.bruk] 빌럼 판뤼브룩, 1220년경~1293년경, 이하 ‘기욤/빌럼’)에게 비공식적으로 친서와 선물을 딸려 보냈다. 루이 9세가 머무르고 있던 아크레(라틴어: Acre, 오늘날의 이스라엘 북부 아코 ʻAkko עַכּוֹ)에서 먼저 콘스탄티노폴리스(라틴어: Constantinopolis,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 İstanbul)로 간 기욤/빌럼은 현지에서 왕의 사절 자격으로가 아니라 프란체스코회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선교의 여행을 스스로의 의지로 동방으로 떠나는 것이라는 설교를 하는 등 공식 사절로 비쳐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12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출발한 기욤/빌럼의 일행은 정식 사절단이 아닌 탓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거쳐 러시아 남부 볼가강 근처 사르타크의 주둔지에 이르렀다.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인 사르타크의 신하 한 명(기욤/빌럼은 그의 이름을 Coiac ‘코야크’로 적는다)이 기욤/빌럼을 사르타크에 소개해주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동방 기독교를 흔히 이르는 이름이다. 431년 에페수스(라틴어: Ephesus, 오늘날의 터키 에페스 Efes) 공의회에서 당시의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라틴어: Nestorius, 386년~450년)의 그리스도에 관한 이론을 이단으로 결정하고 그를 파문시켰을 때 페르시아의 교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퍼진 기독교의 교파를 네스토리우스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교회 분열의 원인이 어찌되었든 이들 지역의 기독교가 꼭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을 따른 것은 아니며 ‘네스토리우스교’는 서방 기독교의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해서 오늘날 학자들은 ‘동방 기독교’와 같은 중립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욤/빌럼이 쓴 용어인 ‘네스토리우스교’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오늘날 동방 기독교는 이슬람교 등의 세력에 밀려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서남해안 일부 정도에만 남아 있지만 13세기 당시에는 서방 기독교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으며 신자 수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몽골 제국의 지도층에도 동방 기독교의 영향이 상당해서 칭기즈 칸의 막내 며느리이자 후에 원 세조가 되는 쿠빌라이 칸을 비롯한 네 아들을 모두 황제로 키운 소르칵타니(Sorqaqtani, 1252년 사망)는 독실한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였다.

사르타크는 기욤/빌럼에게 축복을 받고 그가 가지고 온 성경과 십자가를 살펴본 후 루이 9세의 친서를 확인했다. 기욤/빌럼은 라틴어로 된 원본을 미리 아랍어와 시리아어(Syriac, 서남아시아의 공통어로 쓰이던 중세 아람어)로 번역해왔지만 사르타크는 세 언어 모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의 궁중에 아랍어와 시리아어를 하는 이들이 있어 서한의 내용을 몽골어로 설명해주었다. 사르타크는 자신의 권한만으로는 서한에 답할 수 없다며 아버지인 바투 칸에게 기욤/빌럼의 일행을 보냈다. 기욤/빌럼을 떠나보내면서 코야크와 서기 몇 명은 그에게 사르타크가 기독교인이라고 보고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사르타크는 기독교인도 타타르인도 아니고 몽골인이라는 것이었다(타타르인은 원래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간 튀르크계 부족 가운데 하나인 타타르족에 속한 이들을 이르지만 이에 무지한 유럽인들은 몽골인들도 타타르인으로 부르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기독교인’을 종족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욤/빌럼은 이를 눈치챘으면서도 사르타크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결론은 받아들인 듯하다. 사르타크가 그리스도를 믿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으로 볼 때 기독교인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기록들로 볼 때 사르타크는 실제 네스토리우스교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기욤/빌럼은 서방 기독교인으로서의 편견 때문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

기욤/빌럼 일행은 볼가 강을 가로질러 바투 칸을 만나고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서한의 내용에 대한 답변은 수도 카라코룸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또다시 떠넘겨졌다. 그래서 기나긴 여정 끝에 마침내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해인 1254년, 카라코룸 근처에서 몽골 제국의 제4대 황제이자 칭기즈 칸의 손자인 몽케 칸(Möngke Qaγan 몽케 카간, 재위 1251년~1259년)을 알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약 7개월 간 몽케 칸과 함께 머물면서 카라코룸에도 입성하고 네스토리우스교·불교·이슬람교 신자들과 함께 황제 앞에서 종교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황제를 개종시키는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1255년 유럽에 돌아온 후에 루이 9세에게 바친 그의 여정에 대한 기록은 몽골 제국의 지리와 문화, 특히 종교에 대한 상세한 사실 위주의 묘사로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 아래 있던 서유럽과 중부 유럽의 공통어이던 라틴어로 썼으며 한 사본에 붙은 제목은 Itinerarium fratris Willelmi de Rubruquis de ordine fratrum Minorum, Galli, anno grat. 1253 ad partes orientales, 즉 《프랑스의 작은형제회 수도사 Willelmus de Rubruquis의 1253년 동방으로의 여정》이다. ‘작은형제회’는 프란체스코회의 다른 이름이며 Willelmi는 기욤/빌럼의 라틴어 이름인 Willelmus의 속격(屬格) 형태이다. 보통 우리가 라틴어 이름을 논할 때는 주격(主格) 형태를 기본형으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라틴어 이름 가운데는 제2변화 남성 단수형의 주격 어미인 -us ‘우스’로 끝나는 것이 많다(Julius ‘율리우스’, Augustus ‘아우구스투스’ 등). 왜 우리가 ‘기욤’ 또는 ‘빌럼’이라고 부르는 이름이 라틴어로 Willelmus인지는 뒤에 자세하게 설명한다.

뒤의 de Rubruquis는 기욤/빌럼의 출신지를 나타낸다. 성(姓)이 흔하지 않던 중세 인물은 흔히 출신지 또는 활동지로 구별한다. 기욤/빌럼이 속한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의 창립자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이탈리아어: Francesco d’Assisi [fran.ˈʧes.ko.das.ˈsiː.zi] 프란체스코 다시시)는 아시시(오늘날의 이탈리아 중부) 출신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또 잉글랜드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오컴의 윌리엄(영어: William of Ockham [ˈwɪl.jəm.əv.ˈɒk.əm] 윌리엄 오브 오컴)은 영국 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오컴 출신이다. 이 지명의 현 철자는 Ockham이지만 오컴의 윌리엄의 저서에 나오는 유명한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은 옛 철자를 써서 Occam’s razor로 흔히 부른다. 한편 프랑스의 성직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프랑스어: Bernard de Clairvaux [bɛʁ.naʁ.də.klɛʁ.vo] 베르나르 드클레르보)는 프랑스의 클레르보 수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었으니 출신지보다는 활동지가 이름이 된 경우이다.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뤼브루크/뤼브룩

그러면 de Rubruquis가 의미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로부터”를 뜻하는 라틴어의 전치사 de의 목적어는 탈격(奪格) 형태가 쓰이므로 Rubruquis는 탈격형이다. 라틴어의 격변화에서 제1변화와 제2변화의 복수 탈격형에 어미 -is가 쓰인다. 그런데 이 여행기는 사본마다 저자를 나타내는 철자가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아서 Willelmi de Rubruquis 대신 Guillelmi de Rubrock, Willelmi de Rubruc, Willielmi de Rubruquis, Guilelmi de Rubruquis 등 다양한 표기가 쓰인다. 여기서 Rubrock, Rubruc 등에서는 그의 출신지를 탈격 어미 없이 썼다.

오늘날 프랑스 북부 노르(Nord [nɔːʁ]) 주에는 뤼브루크(프랑스어: Rubrouk [ʁy.bʁuk], 네덜란드어: Rubroeck [ˈryː.bruk] 뤼브룩)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2세기와 13세기 문헌에서 이 지명은 Rubruc, Ruburch, Rubrouch, Rubroc, Rubroec, Rubruech 등의 철자로 등장한다(출처). 그러므로 de Rubruquis는 이 마을 출신을 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기욤/빌럼의 출신지는 바로 이 뤼브루크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지명의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발음은 거의 비슷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 프랑스어의 어말 무성 파열음은 ‘으’를 붙여 적는데 네덜란드어의 어말 무성 파열음은 짧은 모음 뒤에서 받침으로 적는다는 규정 차이 때문에 한글 표기가 각각 ‘뤼브루크’와 ‘뤼브룩’으로 나뉜다.

네덜란드어에서는 간혹 그를 ‘라위스브룩의 빌럼(Willem van Ruysbroeck [ˈʋɪ.ləm.vɑn.ˈrœy̯z.bruk] 빌럼 판라위스브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Ruysbroeck은 오늘날의 브뤼셀 인근 마을인 라위스브룩(Ruisbroek [ˈrœy̯z.bruk])의 옛 철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당시 라위스브룩은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브라반트(네덜란드어: Brabant [ˈbraː.bɑnt]) 공국령으로 만일 기욤/빌럼이 이곳 출신이었다면 자신을 ‘프랑스의 작은형제회 수도사’로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라위스브룩의 빌럼’이라고 부르는 것은 ‘뤼스브룩의 얀(Jan van Ruusbroec [ˈjɑn.vɑn.ˈryːz.bruk] 얀 판뤼스브룩, 1293년경~1381년)’ 또는 ‘라위스브룩의 얀(Jan van Ruysbroeck [ˈjɑn.vɑn.ˈrœy̯z.bruk] 얀 판라위스브룩)’으로 알려진 이곳 출신의 신비주의 신학자와의 혼동으로 인한 실수로 보인다.

한편 프랑스어에서는 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의 탈격형을 아예 이름처럼 써서 ‘뤼브뤼키스(Rubruquis [ʁy.bʁy.kis])’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스파냐어에서도 ‘루브루키스(Rubruquis [ru.ˈbɾu.kis])’라고 흔히 부른다. 이와 비슷하게 피렌체 공화국의 빈치(이탈리아어: Vinci [ˈvin.ʧi], 오늘날의 이탈리아) 출신이라서 ‘빈치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a Vinci [leo.ˈnar.do.da.ˈvin.ʧi], 1452년~1519년)’라고 불리는 화가이자 과학자, 발명가를 ‘다빈치’로 부르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다빈치는 성이 아니라 그냥 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연구가들은 이름인 ‘레오나르도’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마찬가지로 출신지를 나타내는 말인 ‘뤼브뤼키스/루브루키스’보다는 이름인 ‘기욤/빌럼’으로 부르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런데 백과사전이나 역사책에서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을 소개할 때는 그를 프랑스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플랑드르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뤼브루크가 프랑스령 플랑드르(프랑스어: La Flandre française [la.flɑ̃.dʁə.fʁɑ̃.sɛːzə] 라 플랑드르 프랑세즈네덜란드어: Frans-Vlaanderen [ˌfrɑns.ˈflaːn.də.rən] 프란스플란데런)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플랑드르는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을 이르는 이름으로 주로 쓰이지만 중세의 플랑드르는 프랑스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이 북해와 만나는 지역, 즉 지금의 벨기에 북서부와 여기에 맞닿은 프랑스 북부·네덜란드 남서부에 있던 백작령이었다. 플랑드르 백작은 프랑스 왕의 신하였으나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양쪽으로부터 봉토를 받았으며 별 간섭 없이 영지를 다스렸다. 플랑드르 백작령은 명목상 프랑스 왕국에 속했지만 실질적인 독립국이었는데 모직물 산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번창했기 때문에 이를 탐낸 프랑스 왕과 맞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1297년~1305년 프랑스·플랑드르 전쟁) 그 후 백년 전쟁(1337년~1453년)에서도 잉글랜드 편이 되어 프랑스 왕과 다시 맞서 싸웠다. 왕과 신하가 서로 전쟁을 치른 셈인데 잉글랜드 왕도 당시에는 프랑스에 봉토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자국의 왕인 동시에 프랑스 왕의 신하였으니 봉건 시대의 중세 유럽은 오늘날의 국가 관계에 대한 상식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플랑드르 백작령은 1369년 부르고뉴 공국에 합병되어 독립적인 영지의 지위를 상실한 뒤에도 명목상으로는 존속되어 신성로마제국,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 밑에 들어가는 복잡한 역사를 겪었으며 프랑스 혁명 전쟁 때인 1795년에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프랑스에 할양되면서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1815년 빈 회의에서 옛 플랑드르 백작령의 대부분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에 들어갔으며 벨기에의 분리독립 이후에는 대부분이 벨기에에 들어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한편 프랑스의 루이 14세(프랑스어: Louis XIV [lwi.ka.tɔʁzə] 루이 카토르즈, 재위 1643년~1715년)는 에스파냐와의 전쟁 끝에 1659년 피레네 조약을 통해 현재의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으며 계속된 영토 확장 활동을 통해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프랑스령 플랑드르 전체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 프랑스령 플랑드르를 제외한 플랑드르 백작령은 중세 프랑스 봉토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의 프랑스에 속하지 않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중세 역사를 다룰 때 유독 플랑드르는 프랑스와 구별해서 다루며 그 출신 인물은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플랑드르인으로 보통 소개한다. 플랑드르 백작령의 남서부가 명목상의 프랑스 봉토를 넘어서 프랑스의 일부가 된 것은 후대에야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은 이웃하는 옛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던 지역과 함께 네덜란드어 방언을 쓰는 주민이 많았다. 그래서 14세기부터는 플랑드르와 브라반트 지역에서 쓰는 네덜란드어를 플랑드르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브라반트 지역에서 쓴 언어는 16세기경에 시작된 표준 네덜란드어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표준 네덜란드어라고 하면 오늘날의 네덜란드 영토에서만 발달했다고 여기기가 쉽지만 오늘날 브라반트 지역의 대부분은 벨기에에 속한다.

19세기에는 벨기에에서 사용 언어에 따라 지역을 구분할 때 옛 플랑드르 백작령과 옛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던 지역은 물론 옛 론(네덜란드어: Loon [ˈloːn])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까지 아울러 플랑드르라고 흔히 부르기 시작하였다. 옛 론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은 림뷔르흐(네덜란드어: Limburg [ˈlɪm.bʏrəx]) 주가 되었는데 이 이름은 중세의 림부르크(독일어: Limburg [ˈlɪm.bʊrk])/랭부르(프랑스어: Limbourg [lɛ̃.buːʁ])/림뷔르흐 공국에서 따왔다. 벨기에의 림뷔르흐 주의 동쪽에 접하는 네덜란드의 주도 같은 이름의 림뷔르흐 주인데 정작 중세의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중심부는 오늘날의 벨기에 남쪽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 있었고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림뷔르흐 주와 거의 영토가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 역사를 따지면 잘 들어맞지 않는 이름이지만 어쨌든 오늘날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림뷔르흐 주를 합쳐 림뷔르흐라고 한다. 중세의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수도는 오늘날 프랑스어권의 마을인 랭부르(Limbourg)이므로 한글 표기에서는 지역을 일컫는 림뷔르흐와 마을을 일컫는 랭부르를 혼동할 염려가 없다. 림뷔르흐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언어는 표준 네덜란드어와 마찬가지로 고대 저지 프랑크어에서 유래했지만 이웃하는 독일, 룩셈부르크에서 쓰는 중부 프랑크어 방언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림뷔르흐어를 네덜란드어의 방언이 아닌 독자적인 지역 언어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벨기에를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의 3개 언어권으로 나눌 때 림뷔르흐는 네덜란드어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니 오늘날에는 원래의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했던 지역 뿐만이 아니라 브라반트, 림뷔르흐도 아울러 플랑드르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수도 랭부르를 포함하여 중세 림부르크/랭부르/림뷔르흐 공국의 남서쪽에서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어와 비슷한 왈롱어(프랑스어: Wallon [ʽwa.lɔ̃])라는 언어를 썼다. 예전에는 왈롱어를 프랑스어의 일개 방언 정도로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지역 언어로 본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등지에서 쓰이는 로망어(통속 라틴어에서 분화한 언어)의 한 갈래를 갈리아로망어라고 하는데 프랑스어와 왈롱어가 둘 다 여기 속한다. 오늘날의 벨기에 남부 대부분에서 왈롱어가 쓰였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역시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피카르디어, 로렌어, 샹파뉴어 등이 쓰였지만 1795년 현 벨기에 영토가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다른 갈리아로망어계 지역 언어들이 프랑스어에 밀리기 시작하였으며 공교육의 언어로 프랑스어가 자리잡으면서 오늘날에는 젊은 층에서 전통 지역 언어를 듣기 힘들다. 하지만 ‘왈롱’은 갈리아로망어(오늘날에는 주로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인을 이르는 이름으로 계속 쓰이며 오늘날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을 ‘플랑드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벨기에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은 왈로니(프랑스어: Wallonie [ʽwa.lɔ.ni])라고 부른다.

《프란다스의 개》 또는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으로 흔히 알려진 소설이 있다. 영국 소설가 위다(영어: Ouida [ˈwiːd.ə], 1839년~1908년)의 1872년 작품으로 원 제목은 A Dog of Flanders이다. ‘프란다스/플란다스’는 플랑드르의 영어 이름인 플랜더스(영어: Flanders [ˈflænd.əɹz])가 일본어 중역을 통해서 들어온 표기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벨기에 안트베르펜(네덜란드어: Antwerpen [ˈɑnt.ʋɛrə.pən];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따르면 ‘안트베르펀’이지만 아직까지 표준 표기는 이전의 ‘안트베르펜’) 근처의 작은 마을인데 안트베르펜은 원래 플랑드르 백작령이 아니라 브라반트 공국에 속한 도시였다. 즉 중세 백작령을 가리키던 ‘플랑드르’라는 지명의 기준이 변하여 같은 네덜란드어권인 이웃 지역도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플랑드르어(네덜란드어: Vlaams [ˈvlaːms] 플람스, 프랑스어: flamand [fla.mɑ̃] 플라망, 영어: Flemish [ˈflɛm.ɪʃ] 플레미시)라고 하면 벨기에에서 쓰는 네덜란드어를 이른다. 그러니 한국어에서는 이 지역을 이를 때 네덜란드어 이름인 ‘플란데런(네덜란드어: Vlaanderen [ˈvlaːn.də.rən])’ 대신 프랑스어 형태를 딴 ‘플랑드르(프랑스어: Flandre [flɑ̃ː.dʁə])’를 쓰는 것은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제2외국어로도 많이 배우고 한글 표기도 오래 전부터 정립된 반면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은 2005년에야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되었다. ‘플랑드르’가 표준 표기로 정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또 네덜란드어 표기법이 추가되었다 하더라도 전통 표준 발음에서 멀어진 네덜란드식 신형 발음에 지나치게 치우쳐 벨기에의 고유명사 표기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점도 있다. 어두의 /v/를 예로 들자면 전통 표준 발음에서는 언제나 [v]로 발음되었고 옛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아직도 어두에서 거의 완전한 유성음 [v]로 발음된다. 벨기에의 나머지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에서는 음성학적으로 어두에서 약간의 무성음화가 관찰되며 이는 [v̥]로 나타낼 수 있고 아직은 [f]와 구별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북쪽으로 갈수록 무성음화가 진전되어 어두에서 [f]와 합쳐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북부 프리슬란트 발음에 이르러는 어두 뿐많이 아니라 어중에서도 [f]로 발음되는 경향이 강해 /v/ 음소가 아예 /f/와 합쳐진 상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어권 전체를 보았을 때 이는 지역에 따라 같은 음소 /v/가 위치에 따라 실현되는 변이음의 차이로 봐야 하며 네덜란드어 사전에 쓰이는 발음 표시에서는 아직도 전통 표준 발음에 따라 모든 위치에서 [v][f]를 구별한다. 그런데 네덜란드어 표기법에서는 네덜란드 일부에서 쓰이는 발음 형태를 기준으로 삼았는지 어두의 v는 ‘ㅍ, 프’로 적고 그 외에는 모두 ‘ㅂ, 브’로 적도록 하였다. 그래서 Vlaanderen [ˈvlaːn.də.rən]을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블란데런’이 아니라 ‘플란데런’이다(Frans-Vlaanderen [ˌfrɑns.ˈflaːn.də.rən] 프란스플란데런 에서는 앞 자음의 영향으로 /v/[f]로 무성음화한다). 중세 네덜란드어에서 어두의 마찰음 [f, s][v, z]로 유성음화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의 어두 [v]는 다른 언어의 [f]에 대응되는 경우가 많다. Vlaanderen에서는 어두의 v-가 이웃 언어에서는 f-로 대체되어 프랑스어로는 Flandre, 영어로는 Flanders로 부르니 ‘플란데런’으로 적는 것이 그런데로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네덜란드어 표기법의 추가로 네덜란드어 이름에 흔히 등장하는 전치사 van [vɑn]을 ‘반’ 대신 ‘판’으로 적게 한 것은 부작용이 더 많지 않나 한다. 화가 Vincent van Gogh [ˈvɪn.sɛnt.fɑŋ.ˈɣɔχ]는 ‘*고흐, 빈센트 반’으로 쓰는 관용 표기를 표준 표기로 인정하여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았다(여기서 van [vɑn]은 앞뒤 자음에 동화하여 [fɑŋ]으로 발음된다). 벨기에의 전 총리 Herman Van Rompuy [ˈɦɛɾ.mɑn.vɑn.ˈrɔm.pœy̯]는 2009년 3월 25일 제83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 ‘판롬파위, 헤르만’으로 정했다가 벨기에 대사관의 요청으로 2010년 9월 15일 제92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벨기에에서 쓰이는 발음에 더 가까운 ‘반롬푀이, 헤르만’으로 고쳤다.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언어 상황은 어땠을까? 전통적으로 됭케르크(프랑스어: Dunkerque [dœ̃.kɛʁkə], 네덜란드어: Duinkerke [ˈdœy̯ŋ.kɛrə.kə] 다윙케르커)를 중심으로 한 북부에서는 플랑드르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 방언이 쓰였으며 릴(프랑스어: Lille [lilə], 네덜란드어: Rijsel [ˈrɛi̯.səl] 레이설)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는 프랑스어와 비슷한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피카르디어 방언이 쓰였다. 뤼브루크/뤼브룩은 네덜란드어권인 북부에 속한다. 그러니 이곳 출신인 기욤/빌럼의 모어는 중세 네덜란드어 방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파리에서도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 왕을 섬겼으니 고대 프랑스어도 구사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뤼브루크/뤼브룩은 프랑스령이므로 프랑스어에 따른 표기인 ‘뤼브루크’로 써야 하겠지만 중세에는 네덜란드어 방언이 우세한 플랑드르 백작령의 일부였으니 13세기의 시대적 배경에 맞는 표기는 네덜란드어를 따른 ‘뤼브룩’일 것이다.

기욤과 빌럼, 윌리엄과 윌렐무스

프랑스어의 기욤(Guillaume [ɡi.joːmə]), 네덜란드어의 빌럼(Willem [ˈʋɪ.ləm])은 고대 고지 독일어의 willo와 helm이 결합한 Willahelm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Willahelm은 Wilhelm이 되어 현대 독일어의 빌헬름(Wilhelm [ˈvɪl.hɛlm])으로 이어진다. 독일어에서 철자 w의 발음이 양순 연구개 접근음 [w]에서 순치 마찰음 [v]로 바뀐 것은 17세기경이니 Willahelm~Wilhelm의 첫 자음은 원래 [w]였다. 갈리아로망어에서는 게르만어 이름 Willahelm~Wilhelm을 Willelmu라는 형태로 받아들였다. 중세에 흔히 쓴 라틴어 형태 가운데 하나인 Willelmus도 여기서 나왔다.

갈리아로망어 가운데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쓰인 고대 노르만어(Old Norman)에서는 이것이 다시 Williame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노르만족은 흔히 프랑스어를 썼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언어인 고대 노르만어는 독자적인 갈리아로망어 계통의 언어이다). 이 이름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잉글랜드 왕이 된 노르망디 공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ˈwɪl.jəm.ðə.ˈkɒŋk.əɹ.əɹ] 윌리엄 더 콩커러, 재위 1066년~1087년)의 영향으로 고대 영어(앵글로색슨어)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오늘날 영어에서는 윌리엄(William [ˈwɪl.jəm])이란 형태로 쓴다. 고대 영어에서도 처음에는 이 이름을 Willelm과 같은 형태로 썼지만 잉글랜드 지배층의 언어가 된 고대 노르만어의 영향으로 차츰 William으로 통일된 것이다.

영어와 중세 노르만어에서는 원래의 [w] 음이 보존되었지만 파리 중심으로 쓰인 중앙 프랑스어에서는 이 음소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ɡʷ~ɡw]로 대체되었다. 이는 이후 [ɡ]로 단순화되어 현대 프랑스어의 기욤(Guillaume [ɡi.joːmə])이 된 것이다. 다른 로망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 같은 이름이 이탈리아어로는 굴리엘모(Guglielmo [ɡuʎ.ˈʎɛl.mo; -ˈʎel-]), 에스파냐어로는 기예르모(Guillermo [ɡi.ˈʎeɾ.mo]), 포르투갈어로는 길례르므(Guilherme [ɡi.ˈʎɛɾ.mɨ]), 카탈루냐어로는 길롐(Guillem [ɡi.ˈʎɛm])이 되었다. 로망어에서 차용어의 [w]를 [ɡʷ~ɡw]로 대체한 예는 이 밖에도 많다. 예를 들어 신대륙에 분포한 초식 도마뱀 몇 종을 가리키는 이름인 ‘이구아나’도 카리브 해 원주민의 언어인 타이노어(Taino) 단어 iwana를 에스파냐어에서 ‘이과나(iguana [i.ˈɣwa.na])’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여담으로 영어에는 [w]를 쓴 고대 노르만어 형태와 [ɡʷ~ɡw]를 쓴 중앙 프랑스어 형태가 공존하는 예가 더러 있다. 노르만어계 warden과 프랑스어계 guardian, warranty와 guarantee, wile과 guile, wage와 gauge 등을 들 수 있다. 1154년 중앙 프랑스어권인 앙주(Anjou [ɑ̃.ʒu])의 백작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여 헨리 2세(Henry II [ˈhɛn.ɹi.ðə.ˈsɛk.ənd] 헨리 더 세컨드, 재위 1154년~1189년)로 즉위하고 중앙 프랑스어가 잉글랜드 왕실의 언어가 되면서 중세 영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한편 네덜란드어에서는 [w]가 대부분의 환경에서 순치 접근음 [ʋ]로 바뀌었기 때문에 빌럼(Willem [ˈʋɪ.ləm])이 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v]에 가까운 음으로 보고 ‘ㅂ’으로 적도록 했지만 사실 순치음인 [v]와 접근음인 [w]의 중간음에 가깝고 네덜란드어에서 w /ʋ/와 v /v/는 서로 구별되는 음소이기도 하다. 또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발음에서는 보통 양순 접근음 [β̞]로 발음되며 전설모음 /i, ɪ, e/ 앞에서는 변이음 [ɥ]도 흔히 관찰되므로 ‘윌럼’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기욤, 빌럼, 윌리엄 등은 원래 같은 이름에서 온 것이다. 물론 현대에는 이들이 각각 다른 이름이다. Guillaume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프랑스어권 출신의 사람은 다른 언어권에 가도 Guillaume으로 불린다. 심지어 프랑스어권 출신이 아니라도 프랑스어식 이름인 Guillaume으로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세 인물의 이름, 특히 왕족이나 교황의 이름은 흔히 각 언어에 맞는 번역명을 사용한다. 그래서 같은 인물을 프랑스어로는 Guillaume de Rubrouck, 네덜란드어로는 Willem van Rubroek, 영어로는 William of Rubruck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왕족과 교황의 이름은 번역명을 쓰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현 교황 프란치스코(라틴어: Franciscus)는 이탈리아어로는 프란체스코(Francesco [fran.ˈʧes.ko]), 영어로는 프랜시스(Francis [ˈfɹæːnts.ᵻs]), 프랑스어로는 프랑수아(François [fʁɑ̃.swɑ]) 등으로 부른다. 마치 중국의 역사 인명을 동아시아 각국에서 각각의 한자음을 써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한자 문화권에서 군주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묘호 太宗은 한국에서는 ‘태종’으로 부르고 표준 중국어에서는 ‘타이쭝(Tàizōng)’, 일본어에서는 ‘다이소(たいそう Taisō)’, 베트남어에서는 ‘타이똥(Thái Tông)’으로 부른다.

그러니 역사 인물을 다룬 글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이에 주의하여 각 이름에 어울리는 원 언어를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라파엘로(이탈리아어: Raffaello [raf.fa.ˈɛl.lo], 1483년~1520년)를 영어 이름인 Raphael에 이끌려 ‘라파엘’로 쓰거나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프랑스어: Jean Calvin [ʒɑ̃.kal.vɛ̃], 1509년~1564년)을 영어 이름인 John Calvin에 이끌려 ‘존 캘빈/칼빈’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신 중세의 인물 가운데는 뤼브루크의 기욤/뤼브룩의 빌럼의 경우처럼 오늘날의 국가 구분의 기준에 명쾌하게 들어맞지 않아 원 언어를 무엇으로 잡을지 정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의 출신지인 뤼브루크는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어권이며 13세기에는 네덜란드어가 주로 쓰인 실질적인 독립국인 플랑드르 백작령의 일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원어를 네덜란드어로 간주하고 ‘뤼브룩의 빌럼’으로 쓰는 것이 좋겠지만 오늘날 그의 출신지는 프랑스에 속해있으며 그가 프랑스 왕을 섬겼다는 점, 또 국제적으로 프랑스어가 네덜란드어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 본 글에서는 프랑스어식 표기와 네덜란드어식 표기를 병기하되 프랑스어식 표기를 우선시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네덜란드어식 명칭을 우선시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라틴어로 여행기를 기록했으니 아예 라틴어 이름 Willelmus에 따라 ‘윌렐무스’로 적는 것은 어떨까? 중세 인물의 이름을 라틴어 이름에 따라 적은 전례로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라틴어: Thomas Aquinas, 이탈리아어: Tommaso d’Aquino [tom.ˈmaː.zo.da.ˈkwiː.no] 톰마소 다퀴노, 1225년~1274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기욤/빌럼의 경우 라틴어 이름이 통일되어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의 저서에도 Willelmus, Willielmus, Guillelmus, Guilelmus 등 사본마다 그의 이름 표기가 달라지기 일쑤였다. 또 오늘날 프랑스어의 기욤, 네덜란드어의 빌럼, 영어의 윌리엄, 이탈리아어의 굴리엘모 등에 해당하는 이름은 라틴어로 이탈리아어에 가깝게 ‘굴리엘무스(Gulielmus)’로 주로 통일해서 쓰니 본래의 형태와 차이가 있다.

설령 라틴어 이름에 따라 적는다고 해도 중세 유럽의 라틴어 표기는 까다로운 문제가 많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에 포함된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 가운데 라틴어의 표기 원칙이 있지만 몇몇 글자의 표기에 대해서만 쓴 정도이고 고전 라틴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중세 유럽의 인명에 적용하기는 어색하다. 당장 Willelmus의 w는 고전 라틴어에는 없던 글자이니 당연히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고전 라틴어에서 v는 자음으로 쓰일 때는 [w]로 발음되었으나 라틴어의 표기 원칙에서는 ‘ㅂ’으로 적는다(원래 라틴어에는 모음 글자 u와 자음 글자 v의 구별이 없고 둘 다 V 같이 생긴 글자로 나타냈다). 하지만 중세 라틴어에서는 자음 글자 v가  [v]로 발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게르만어 등 다른 언어에 나타나는 [w] 음을 적기 위해 w라는 글자를 새로 도입했다. 그러니 당대의 발음을 따른다면 Willelmus는 ‘윌렐무스’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라틴어 이름을 현대 유럽 언어의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살펴본대로 w로 적는 음의 발음은 후에 네덜란드어에서 [ʋ], 독일어에서 [v]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Willelmus의 현대 네덜란드어식 발음을 따르면 ‘빌렐뮈스’, 현대 독일어식 발음을 따르면 ‘빌렐무스’가 된다. 실제로 근세 이후 유럽의 라틴어식 이름은 보통 현대 유럽 언어의 발음대로 흔히 표기한다. 예를 들어 라틴어 이름으로만 알려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Desiderius Erasmus (1466년~1536년)는 네덜란드어 발음 [de.zi.ˈdeː.ri.jʏs.e.ˈrɑs.mʏs, -jəs-, -məs])에 따라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로 적는 것이 네덜란드어 표기법이 고시된 후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 대신 예전에 쓰던 라틴어식 표기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도 여전히 널리 쓰인다.

그나마 기욤/빌럼의 출신지는 현재의 프랑스 뤼브루크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경우이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유럽 음악을 지배한 이른바 플랑드르 악파의 음악가들은 출신지가 어디인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도 수두룩하다. 작곡가 요하네스 오케헴(네덜란드어: Johannes Ockeghem [jo.ˈɦɑ.nəs.ˈɔ.kə.ɣɛm], 프랑스어: Jean Ockeghem [ʒɑ̃.ɔ.kə.ɡɛm] 장 오크겜, 1420년경~1497년)은 한때 플랑드르 지방, 특히 오늘날 오케헴(네덜란드어: Okegem [ˈoː.kə.ɣɛm])으로 알려진 마을이 있는 현재의 벨기에 북부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1993년 발견된 옛 문서에 의하면 그는 사실 옛 에노(프랑스어: Hainaut [ʽɛ.no]) 백작령에 속한 현재의 벨기에 남부의 생길랭(프랑스어: Saint-Ghislain [sɛ̃.ɡi.lɛ̃])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게 맞다면 그는 네덜란드어권이 아니라 피카르디어권 출신이다. 피카르디어는 프랑스어에 가깝고 오늘날의 생길랭은 프랑스어권이니 출신지를 따지자면 프랑스어식 이름을 기준으로 ‘장 오크겜(Jean Ockeghem)’으로 불러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예전부터 플랑드르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식 이름으로 이미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프랑스어에서도 그를 네덜란드어식 이름인 Johannes로 부르는 일이 더 흔하다.

참고로 네덜란드어 Johannes는 2음절 이상의 단어에서 마지막 음절의 e를 ‘어’로 적도록 하는 표기 규정에 따라 최근에 ‘요하너스’로 심의된 예도 있지만 기존 용례에서는 대체로 관용 표기를 인정한 ‘요하네스’로 쓰므로 여기서도 ‘요하네스’로 썼다. 대신 Ockeghem [ˈɔ.kə.ɣɛm], Okegem [ˈoː.kə.ɣɛm]은 마지막 음절의 e가 [ə]가 아니라 [ɛ]로 발음되므로 기존 표기 용례 ‘위트레흐트(Utrecht [ˈyː.trɛxt])’에서처럼 ‘오케험’ 대신 ‘오케헴’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몽골어 표기에 관하여

본 글에서 몽골 제국 관련 인명과 지명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기를 따르고 괄호 안에 몽골 문자 표기를 블라디미르초프·모스타르트(Vladimirtsov–Mostaert) 표기법에 따라 로마자로 옮겨 적는다. 원래의 몽골 문자 표기는 글꼴 지원 문제로 생략하였다. 현대 몽골어는 독립국 몽골의 표준어인 할하어(Khalkh, 몽골어 키릴 문자: Халх 할흐)와 중국에 속한 내몽골 자치구의 표준어인 차하르어(몽골 문자 전사: Čaqar 차카르, 몽골어 병음: Qahar 차하르)가 공존한다. 몽골의 할하어는 키릴 문자로 표기하며 중국의 차하르어는 몽골 문자로 표기한다. 몽골 문자는 1204년경 위구르 문자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그 철자법은 13세기의 중세 몽골어 발음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현대 몽골어 발음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현재로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중세 몽골어나 현대 몽골어 표기 규정이 없고 특히 중세 몽골어의 경우 기존 표기 용례에서도 완전한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여기서 괄호 안에 로마자로 쓴 중세 몽골어 형태 옆에 작은 글씨로 쓴 한글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들에 적용되는 원칙을 최대한 따랐으며 γ, q는 각각 ‘ㄱ, ㅋ’으로, ö, ü는 각각 ‘오, 우’로 썼다. 유럽 언어의 표기에서 ö, ü는 보통 전설 모음을 나타내며 ‘외, 위’로 적는데 실제로 기존 학설에서는 중세 몽골어에서 ö, ü, o, u가 각각 /ø, y, o, u/를 나타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현대 몽골어계 언어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발음을 들어 각각 /o, u, ɔ, ʊ/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741년에 간행된 조선 시대의 몽골어 교본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에서는 ö, ü, o, u를 각각 ‘워, 우, 오, 오’로 썼다는 점도 ö, ü가 전설 모음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